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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뉴욕 생존기

김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시던 어르신

뉴욕에 자리잡은지 며칠이 되지 않아 우연히 결혼식에 초대되었습니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유쾌한 결혼식이었고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연회가 시작됐습니다.

평소에는 연회뷔페에 가면 초밥만 먹곤 했는데, 외국에 나온 탓인지 김치가 땡기더군요. 몇 조각 가져다 먹고 있는데 낯선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한 어르신께서 "김치 잘 먹네?"하시며 흐뭇하게 웃어주시길래 무심결에 '김치가 참 맛있네요'라며 대답하니 연실 '한국 음식이 좋아? 맛있어?' 하십니다. 영문을 몰랐지만 곧 이분이 저를 이쪽 이민 2세로 생각하시고 그러시나보다 싶더군요.

언어의 소통문제로 인해 가족간 대화가 단절이 우리 이민 사회의 큰 문제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비단 언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은 한국사람으로 미국에 와서 지금은 비록 미국사람이 되긴했지만, 자식에게는 이미 조국의 의미가 다릅니다. 아버지와는 다른 문화, 다른 식습관, 그리고 다른 생활패턴... 그것이 이제 나이가 들어 조국과 고향을 그리운 어르신들에게는 서글픔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당신을 닮아 기뻐했던 자식들이 이제는 닮은 것이 하나도 없는 '상관없는 존재'로 느껴지는 것에 서글퍼지시는 것이겠지요.

한집에 살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사는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요? 문득 한집에 살며 아침식사를 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된장국과 하얀 쌀밥을, 아이들은 토스트와 시리얼을 먹는 모습이 갑자기 어색하게 다가왔습니다.

본디 가족 간의 일체감과 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의 공통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언어가 다르고 생활 패턴이 다르고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면 단지 한집에 산다고해서, 같은 성씨를 쓴다고해서 가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소 대화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서로의 정을 느낄수있고 자리가 바로 식사 자리인데 그 조차도 서로가 너무나 다르다보니 정을 느끼기 힘드셨나 봅니다.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더라도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국 한그릇, 정성들여 담그신 김치 한조각을 온 가족이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 그 자리가 그분은 얼마나 그리우셨을까요.

우리네 이민 1세들이 미국에 자리 잡는데 했던 고생담을 듣다보면 끝을 나기 힘듭니다.(그저 눈물만을 흘리시는 분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그분들이 말년에 자식, 손주들과 가족의 정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산다고 생각 하니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날 전 라면 먹을 때외에는 그다지 쳐다보지 않던 김치를 한포기나 가져다가 먹으며 그 어르신께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에요...라는 멘트를 연실 난발했습니다. 그저 접대성 멘트가 아닌 진심을 다해서 유창한(?)한국말로 그분들의 대화 상대가 되어드렸습니다. 부디 그분의 가족이 말은 통하지 않고, 생활패턴은 다르지만 가슴만큼은 서로를 아끼는 그런 가족이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품은채...

에필로그
이날 유난히 마음이 무거워져서 깊이 생각해보니 저 자신도 아버지와의 유난히 다른 식성으로 함께 식사시간 한번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기에 다시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되겠지요. 아마도 그 어르신에게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제가 아버지의 식사 제의를 거절 할 때 보았던 아버지의 쓴 웃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 생각났나봅니다... 사실은 저 아버지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