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이어리/뉴욕 생존기

한 가족 두 언어

가끔 아내와 아이가 실갱이를 합니다. '말'이 안통해서죠. 한국어를 미처 다 배우지 못하고 온 탓에 한글다는 영어가 더 친근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뭐든 좋으니 말만 잘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 부부의 작은 소망이지만 불편한 건 사실이네요.

대성이가 한국에서 만 6살이 되면서도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심각함을 느꼈고, 미국에 건너와서도 많이 걱정을 했습니다. 다행히 영어는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한국말보다는 잘 배우는 편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언어장애 치료를 신청해놨지만 석달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네요. 6달까지 대기하는 경우가 있다고하니 ㄷㄷㄷ;;

그래도 다행히 체계적인 교육 덕분인지 영어는 곧잘 합니다. 영어를 하면서 오히려 한국말이 느는 기분이에요. 아직 갈길이 멀긴 합니다. "아빠 너는 저녁 안 드세요?", "엄마 너랑 목욕하기 싫어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만 6살까지 한국에 살던 아이인데.

평소에는 말을 잘듣다가도 가끔씩 기분이 나쁜 날은 엄마가 하는 말이 자기가 하는 말하고 다르다면서 버럭 성질을 내곤합니다. 특히 공부를 할 때 유난히 뾰족해지는 대성군입니다. 유난히 태클이 많거든요. "자 책상에 앉자", "엄마! 책상 아니잖아요. 테이블! 테이블이라고 해야지요!"... 엄마와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그래봐야 자기 손해지요.

ESL을 반학기 다녔지만 여전히 최하위 레벨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일주일에 다섯개씩 외우는 단어를 제법 외우고 그 단어를 이용해서 문장을 만들려고 노력을 합니다. '공부'라는 것을 인식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단어 시험을 잘보면 장난감 가게를 간다는 것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제 1년만 있으면 대성이는 완전 영어권 아이가 될 것 같습니다. 아니 몇개월 내에 그리 될 것 같은데 한국인 정체성이니, 한국어 교육이니 하는 문제보다는 당장 부모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아내는 영어학원을 등록해서 공부하겠다고는 하는데... 벌써 1년째 그 소리입니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지만요.

일단은 영어를 중심으로 살아가겠지만 어떻게든 한국말을 잊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데 결코 쉽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여러 부모님들이 어려움을 호소하시면서 난감해하시는 걸 보면 우리도 마음 단단히 먹고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한나라 말을 써도 의사소통이 어려운데 두나라 말을 하면서 살려고하다보니 참 쉽지 않네요. 

'다이어리 > 뉴욕 생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란눈의 태권보이(1)  (12) 2009.03.19
카드 도용 주의보  (3) 2009.03.01
네번째 보금자리  (4) 2009.02.25
미국 아이들의 봄방학  (8) 2009.02.18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텍스리턴(Tax Return)  (6) 200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