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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이슈/이슈와 토론

내 아버지는 직업군인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과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살며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 군무지에 따라서는 군부대 내에 외치한 관사에서 살기도 했었죠.

골수까지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약주를 한잔 걸치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들! 아빠의 최종 명령이 뭔지 알어? 전쟁나면 3분 버티는거야!! 아빠는 전쟁나면 북한군 3분만 막으면 그 동안 위에서 별들이 작전을 짜는거야. 알겠니? 아빠는 3분을 위해 이렇게 산다."

시골 꼬맹이였던, 그래서 순진하기 그지없었던 저는 그 3분을 위해 인생을 불태우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죠. 다른 곳 군인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전방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항상 전쟁 상황을 염두해두고 살아가셨습니다. 바로 눈앞에 주적을 두고 근무하다보니 당연한 현상입니다.

저는 뉴욕에서 뒤늦게 강의석군의 국군의 날 누드 퍼포먼스 뉴스를 접하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작년에 25년 군생활동안 얻은 지병으로 쉰 넷의 나이로 작고하신 아버지. 전시에 3분의 시간을 벌기 위해 일명 땅개로 반생애를 바치셨고, 그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한 임무라며 아들에게 진지하게 말씀해주셨던 아버지말입니다.

일상 생활에서의 3분. 화장실 가서 힘 한번 주고 나오면 지나가는 매우 하찮은 시간입니다. 평화로운 때에는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3분의 시간. 저는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1분 1초는 결코 그 시간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그 시간을 지켜냄으로서 나라를 지킨다는 투철한 정신으로 무장한 한 사람의 군인이 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의석군이 지금 행하는 모든 자유는 바로 그 자신이 반대하는 '군대'로 부터 온 것이 아닐런지요.

강의석군의 생각에 대해서는 일부분 찬성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군대를 반대하는 이유 십분 이해합니다. 군대란 바로 필요악이라는 것. 진정한 평화라는 것은 군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말입니다.

만약, 강의석군이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기까지 지켜준 군대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에서 나온 행동이라 느껴졌더라면  그저 특이한  세계 평화 퍼포먼스라 이해하고 그에게 박수를 쳐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용기있는 청년이라고말이죠. 하지만, 뉴스를 통해 보게 된 그의 모습에서 느낀 것은 격렬한 분노를 넘어선 서글픔이였습니다.

25년을 최후 3분이라는 시간을 지켜내기기 위해 당신의 삶을 바쳤던 아버지. 산골 오지에서 제대로 된 문화 혜택하나 받지 못하고 나라와 가족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그 분의 삶. 조금 오버하면 가족들 역시도 아버지 직업으로 인해 한 지붕 아래 같은 굴레를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궁상스런 삶이 되어버린 기분이였습니다.

그래도 자랑스러웠던 그분의 삶이 부정되는 기분이였거든요. 당신이 최선을 다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들이였건만, 그저 밥벌이 할 게 없어서 땅개짓을 반평생하다 의미 없는 인생을 산 한 사람으로 죽어간 기분이 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강의석군이 군대라는 것은 악을 행하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그 혜택을 받는 우리로서는 그보다 더 고마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강의석군에게서 그에 대한 일말의, 아주 티클만큼의 감사함을 볼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나 서글프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부디 강의석군은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의 잘남으로 인해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 믿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구가의 피와 땀의 터전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먼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터전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통한 반론이 나왔으면 합니다.